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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노메노'의 탄생

'페노메노'의 탄생

'호날두는 호나우두 수준이 안된다?' 세리에 A의 수비 축구에 균열을 일으킨 '축구의 신' 호나우두

'호날두는 호나우두 수준이 안된다?' 세리에 A의 수비 축구에 균열을 일으킨 '축구의 신' 호나우두

2025.01.24

2025.01.24


 

Editor 콜렉토리
[GOAT 컬렉션] 

축구 황제로 불리던 '호나우두', 공격수들의 무덤 세리에 A에서 완성된 브라질 축구 황제

"누구도 본 적 없는 선수였다. 동료든 상대든, 팬이든 전문가든 호나우두를 보며 모두가 같은 말을 했다"
- 인터밀란 팀 동료 마시모 파가닌


호나우두 '페노메노'의 탄생 배경

1997년 여름, 세리에 A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불만을 느끼던 호나우두를 인터밀란의 모라티 회장이 적극적으로 러브콜하면서 영입에 성공했다. 당시 세계 최고액 이적료(2,700만 파운드, 약 696억 원)를 기록한 이 영입은 인터밀란의 역사를 바꿨다. 이탈리아 밀라노 두리니 거리 발코니에서 수많은 네라주리* 팬들이 환호했고, 쿠르바 노르드**는 호나우두에게 '페노메노'***라는 별명을 붙였다. 모두의 기대에 부응하듯 호나우두는 첫 경기에서 바로 이탈리아 무대 첫 골을 기록했다.


* 네라주리: 인터밀란의 별칭으로, 검정과 파랑을 의미한다.
* 쿠르바 노르드: 인터밀란의 대표적인 서포터스 그룹

* 페노메노(Fenômeno): 포르투갈어로 '현상', '기적', '특별한 존재'를 의미


 

©Getty

UEFA컵 우승의 순간들

1998년 봄, 호나우두의 진가가 유럽 무대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UEFA컵 준결승에서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 맞붙은 인터밀란은 -15도의 혹한 속에서 경기를 치러야 했다. 하지만 원정팀의 무덤으로 불리던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의 얼음장 같은 그라운드도 그의 질주를 막지 못했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호나우두는 환상적인 드리블로 수비진을 농락했다. UEFA컵 결승에서는 라치오를 상대로 더욱 빛났다. 마르케자니 골키퍼를 완벽히 속이고 볼에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를 넘어뜨린 장면은 전설이 됐다. 스코어 차이가 벌어지며 경기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알레산드로 네스타*는 '제발 더 이상 라치오를 굴욕주지 말아달라'며 애원했다.


* 네스타: 라치오와 AC 밀란에서 활약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수비수


1997/98시즌 UEFA 파이널 ©Inter

최강의 수비수를 만나다

1990년대 후반 세리에 A는 '카테나치오'로 상징되는 수비의 리그였다. 공격수 호나우두는 화려한 개인기와 골 결정력으로 수비 중심의 세리에 A를 점령했다. 그는 세리에 A에서 만난 수많은 수비수 중 파올로 말디니*를 가장 어려운 상대로 꼽았다. 

"말디니의 수비는 예술이었다. 그의 위치 선정과 타이밍은 완벽했다." 

말디니는 축구 강국 이탈리아의 수비를 상징하는 세계 최고의 수비수가 되었고, 네스타, 칸나바로, 키엘리니 등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수비수들이 그의 명성을 이어갔다.


* 파올로 말디니: AC 밀란의 레전드 수비수로 25년간 한 팀에서 활약했다.


호나우두 VS 말디니 ©Dyballer™

전성기와 시련의 시간

1997-98시즌, 호나우두는 리그 25골로 득점왕을 차지하며 세리에 A를 지배했다. 인터밀란 시절 5년간 99경기 59골. 호나우두는 득점 기계였다. 스쿠데토*에도 두 차례 근접했다. 그러나 1999년 11월 레체와의 경기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며 시련의 시간이 찾아온다. 이듬해인 2000년 코파 이탈리아 결승 복귀전에서는 투입 6분 만에 같은 부위를 다시 다쳤다. 2001/2002 시즌에는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전술 방식과 충돌했다. 리피는 호나우두에게 수비 가담을 요구했고, 이는 결국 팀 전체의 갈등으로 번졌다.


* 스쿠데토: 이탈리아 세리에 A 우승을 상징하는 방패 모양의 패치


호나우두 하이라이트 ©Sidahmed Amrouche

2002 월드컵, 기적 같은 복귀

그는 16개월의 재활 끝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결승전에서 경험했던 패배의 아픔을 뒤로하고, 한·일 월드컵에서 8골을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4년 전 파리의 악몽을 한일월드컵 우승으로 완벽히 씻어낸 것이다.


호나우두 2002 월드컵 골 모음 ©Benjamín Rodríguez

레알 마드리드로, 그리고 다시 세리에 A로

호나우두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 이후 레알 마드리드 이적을 결정했다. 당시 인터밀란은 리그 3위에 그쳤고, 팀 내 분위기도 좋지 않아 호나우두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호나우두는 레알마드리에서 5년간 뛰고, 세리에A로 복귀한다. 그런데 인터밀란이 아닌 AC 밀란*으로 복귀해 활약하며 밀라노 양대 구단을 모두 거친 특별한 경력을 남겼다.


*AC 밀란과 인터밀란은 같은 도시 밀라노를 연고로 하는 라이벌 구단이다. 인터밀란(FC Internazionale Milano)은 1908년 AC 밀란에서 분리되어 창단됐으며, 'Inter'는 국제를 뜻하는 'International'의 약자다.

영원한 '페노메노'

"처음에는 그저 호나우두였지만, 인터밀란에서 페노메노가 됐다."

그의 고백처럼 인터밀란은 특별했다. 많은 아이들이 그를 따라 머리를 삭발했고, 그의 플레이는 현대 공격수의 새로운 기준이 됐다. 속도와 기술의 완벽한 조화, 수비수를 농락하는 드리블, 그리고 냉철한 골 결정력까지. 5년이라는 짧지만 강렬했던 시간 동안 그는 네라주리의 영원한 전설이 됐다.


 

1993년 브라질 국가대표에 데뷔한 호나우두는 1994년 미국 월드컵 엔트리에 들며 만 17세의 나이로 생애 첫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다. 호나우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1994년 브라질 국가대표 유니폼을 비롯해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축구 역사를 장식한 위대한 선수들의 순간을 'FOOTBALL: THE GREATEST PLAYERS 100' 전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2024년 12월 21일부터 2025년 2월 23일까지 현대백화점 판교점 10층 토파즈홀에서 전설적인 선수들의 소장품이 세계 최초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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